과거와 달리 현대의 육아는 부모에게 과도한 역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학원 셔틀버스와 빈 놀이터가 상징하듯, 오늘날 아이들은 자유로운 실패와 회복의 경험을 박탈당한 채 성장하고 있습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의 시선으로 본 현대 육아의 문제점과 그 해법을 살펴봅니다.
잔디깎기 부모가 아이의 전두엽 발달을 막는 이유
10년 전, 20년 전, 30년 전만 해도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가방을 던져두고 놀이터로 뛰어나갔습니다. 학원은 피아노 학원이나 태권도 정도였고, 운동장에서 축구하고 놀이터에서 술래잡기 하다가 밤이 되면 배고파하면서 알아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놀이터를 보면 텅 비어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영어학원, 논술학원, 셔틀버스 안에 갇혀 있습니다.
세상이 아이를 혼자 두면 안 될 정도로 험악하고 위험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소아청소년과 의사이자 부모로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금 육아가 너무 힘든 이유는 부모님들이 스스로 그 난이도를 높인 측면이 큽니다. 바로 '잔디깎기 부모'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잔디깎기 부모란 아이가 걸어갈 때 길 앞에 있는 장애물들을 부모가 미리 다 깎아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넘어지기 전에 부모가 먼저 장애물을 다 치워주고, 친구랑 싸우면 엄마가 나서서 해결해주며, 심심하다고 하면 스마트폰을 쥐어줍니다. 우리는 이것을 사랑이라고 부르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아이의 성장 기회를 뺏는 것입니다.
뇌 과학적으로 보면 전두엽 발달 기회를 부모가 박탈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뇌의 전두엽은 문제 해결 능력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생겨야 해결을 하게 되고, 넘어져서 아픔을 경험해야 다음엔 조심해야겠다고 배우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전두엽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패를 안 해본 아이는 커서 아주 작은 스트레스만 받아도 와르르 무너지는 유리멘탈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회복 탄력성은 책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무릎이 까져봐야 생기는 것입니다. 예전 아이들이 놀다가 무릎이 까지면 침 바르고 다시 놀았고, 친구랑 싸우면 씩씩거리다가 다음날 또 같이 놀았습니다. 그 과정 자체가 바로 학습이었습니다. 넘어지면 아프다는 것, 친구한테 내 멋대로 하면 친구가 나를 떠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 자생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결핍과 실패의 경험이야말로 문제 해결 능력의 핵심 토대이며, 이를 박탈당한 채 성장한 아이는 사회에 나가 작은 좌절 앞에서도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권위 있는 부모와 독재적인 부모는 다릅니다
또 하나 불편한 진실을 말씀드리자면, 요즘 부모님들은 아이에게 혼을 못 냅니다. 아이 기죽으면 안 된다, 정서에 상처를 준다는 말 때문에 훈육을 두려워합니다. 낡은 얘기지만 예전에는 어른들이 말씀하시면 듣는 척이라도 했고, 잘못하면 종아리도 맞았습니다. 그게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아이들은 알았습니다. 세상에는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규칙이 있고, 어른은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 기분이 법입니다. 식당에서 뛰어다녀도 "하지 마"라고 말로만 하고 제지를 못합니다. 가정 내에서 권위가 무너진 것입니다. 부모가 아이의 눈치를 보는 순간 육아는 지옥이 되고, 그 아이는 사회에 나가서도 본인이 왕인 줄 알고 행동하다가 결국 왕따가 됩니다.
적절한 통제와 훈육은 아이를 보호하는 가장 든든한 울타리입니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부모님은 조금 더 권위 있는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권위적인 부모와 독재적인 부모는 다르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권위 있는 부모입니다.
배가 항해를 하는데 선장인 부모가 우왕좌왕하고 선원인 아이가 눈치를 보면, 그 배에 탄 다른 선원들은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해주는 부모 밑에서 아이는 오히려 안정감을 느낍니다. 가정 내에서 부모의 권위가 무너지는 순간, 아이는 사회에 나가서 진상 취급을 받게 됩니다. 내 아이가 밖에서 미움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집에서는 부모가 엄격한 판사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이는 아이의 자존감을 꺾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규범을 학습시키는 과정입니다. 명확한 경계와 일관된 원칙은 아이에게 혼란이 아닌 안전을 제공합니다. 친구 같은 부모보다 존중할 수 있는 어른으로서의 부모가 아이의 정서 발달에 더욱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멍 때리기가 창의력을 키우는 과학적 이유
요즘 육아가 왜 이렇게 힘들어졌을까요. 부모가 매니저 역할을 하려고 해서 그렇습니다. 정보가 너무 많습니다. 맘카페, 유튜브, 인스타그램에서 "누구네는 벌써 영어를 뗐다더라", "이 교구 안 사주면 발달이 늦는다더라"는 정보들이 부모를 불안하게 만들고, 결국 아이의 24시간을 빈틈없이 관리하게 만듭니다.
아이를 따라다니면서 밥 먹여주고, 학원 라이딩하고, 숙제 봐주다 보면 부모의 인생은 없습니다. 그러니 힘들고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한데, 부모는 번아웃이 된 상태고 아이는 숨막혀합니다. 이게 과연 누구를 위한 육아일까요.
그리고 요즘 아이들은 심심할 틈이 없습니다. 식당 가면 스마트폰, 차 타면 태블릿, 집에서는 꽉 찬 학원 스케줄로 가득합니다. 뇌 과학에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멍 때릴 때, 뇌가 쉴 때 오히려 창의적인 영역이 활성화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마트폰의 화려한 영상과 도파민이 뇌를 꽉 채우면 아이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립니다.
심심하다는 말은 "나 이제 창의적인 걸 해볼까"라는 신호입니다. 그때 영상을 쥐어주지 마세요. 그냥 뒹굴게 해두세요. 그래야 뇌가 쉽니다. 심리학에서는 '충분히 좋은 엄마'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 그냥 적당히 좋은 엄마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아이 스케줄 관리해주고, 실패 안 하게 막아주고, 기분 맞춰주는 것은 부모가 아니라 비서의 역할입니다. 부모가 희생해서 아이를 꽃길만 걷게 한다고 해서 나중에 아이가 커서 그 희생을 알아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내 인생을 엄마 마음대로 했다"고 반항을 거의 100% 합니다. 엄마 아빠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게 오히려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인생 교과서입니다.
조금 대충 키우자는 말은 방치가 아니라 믿고 지켜보는 여유를 의미합니다. 놀이터에서 좀 넘어지게 두고 약 바르면 낫습니다. 친구랑 싸우게도 두고 화해하는 법을 배우게 합니다. 밥을 안 먹으면 한 끼 굶기면 됩니다. 배고프면 다 먹습니다. 우리가 20년 전에 그렇게 자랐어도 멀쩡하게 사회 구성원으로 잘 컸듯이, 우리 아이들에게도 스스로 자라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과도한 개입은 회복탄력성을 약화시킵니다. 넘어지고, 다투고, 심심해하는 경험 자체가 발달의 일부이며, 실패와 결핍의 경험이 문제 해결 능력의 토대가 됩니다. 완벽한 부모가 되려는 부담을 내려놓고 아이의 성장력을 신뢰하는 태도야말로 현대 육아가 회복해야 할 본질입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www.youtube.com/watch?v=R3D0ynYtfs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