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민법에서 부모의 징계권이 삭제되면서, 우리 사회는 육아와 훈육에 대한 관점을 근본적으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법에서 하나의 조항이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한 법 개정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방향을 바꿨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사랑의 매'는 더 이상 법도, 사회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부모들이 훈육과 학대의 경계에서 혼란을 겪고 있으며, 자신도 모르게 정서적 학대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품격 있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징계권 폐지와 여전한 혼란

2021년 민법에서 징계권이 삭제되었습니다. 징계권이란 양육하는 사람이 그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 매를 대도 좋다는, 체벌을 허용하는 조항이었습니다. 물론 때려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허용한다는 점에서 얼마나 헷갈리는 얘기입니까?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이 조항이 폐지되었고, 2021년 이후 관공서 전광판과 거리 플래카드에 징계권 삭제가 엄청나게 홍보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대기업 강연에서 받은 사전 질문 중에는 예비 부모가 "엉덩이 몇 대 정도의 체벌은 가능하냐"고 물어본 사례가 있었습니다. 많이 배우고 능력도 있으며, 연령층도 젊은 예비 부모조차 여전히 체벌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아직도 훈육과 학대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법이 바뀌었다고 해서 사람들의 인식이 즉시 바뀌지는 않습니다. 여러 세대에 걸쳐 당연하게 여겨졌던 '사랑의 매'라는 개념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법의 변화는 사회적 합의를 반영한 것이며, 이제 우리는 체벌 없는 훈육 방법을 배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징계권 폐지는 단순히 매를 들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아이를 인격적으로 대우하라는 근본적인 가치 전환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사실 체벌과 학대, 그리고 훈육은 한 끗 차이로 구별할 수 없을 만큼의 미묘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실수를 범합니다.
정서적 학대, 우리도 모르게 하는 말들

신체적 체벌만이 학대가 아닙니다. 학대는 체벌, 정서적 학대, 방임, 성적 학대 이렇게 네 가지가 있습니다. 부모의 의도는 사랑일 수 있지만, 아이에게 전달되는 말은 학대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때리지 않아도 공포, 버림, 위협을 주는 말은 모두 정서적 학대에 해당합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려면 나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밥 안 먹으려면 나가, 정리 안 하려면 나가, 엄마 말 안 들으려면 나가라는 식입니다. 이것은 방임에 해당하는 학대입니다. 아이가 어디로 나갑니까? 또 다른 예로 "너 이따 집에 가서 좀 맞아야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진짜 때리진 않겠지만, 그 말 자체가 학대인 줄 모르고 나오는 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제부터 네 엄마 안 할 거야"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심은 아니지만 잠깐 아이한테 좀 충격적으로 들리라고 한 이 말은 충격 학대입니다.
물론 부모님의 마음은 같습니다. 너 잘 되라고 합니다. 그런데 나오는 말은 학대인 줄 모르고 막 나옵니다. 우리가 정서적인 학대인 줄도 모르고 하는 말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정서적 학대는 신체적 상처를 남기지 않지만, 아이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이러한 말들이 반복되면 아이는 자존감이 낮아지고, 부모와의 신뢰 관계가 무너지며,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하는지, 그 말이 아이에게 어떻게 들릴지 항상 주의 깊게 생각해야 합니다.
감정 조절법과 후생가외의 지혜

그렇다면 아이가 정말 말을 안 듣고 힘들게 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감정 조절이 핵심입니다. 영상에서 제시하는 3단계 비법을 참고하면 좋습니다. 첫 번째, 머리를 쓰다듬으세요. 화가 날 때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자신에게 일깨워 줍니다. "너는 대뇌피질이 있잖아. 너는 어른이야." 아이는 대뇌피질이 100%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욕구 뇌만 발달해서 말을 안 듣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른은 인간 뇌, 사람한테만 있는 뇌인 대뇌피질이 완전히 발달했습니다.
두 번째, 이마를 만져 보세요. 이마를 만지면서 "전두엽아 부탁해"라고 말합니다. 전두엽은 두뇌의 총사령부입니다. 세 번째, 코 밑을 만지면서 입에게 말을 걸어 보세요. "어떤 말을 할 것인가?" 이렇게 하면 몇 초가 지났나요? 참을 인 자를 몇 개 쓴 건가요? 이 짧은 시간이 우리를 학대가 아닌 훈육으로 이끕니다.
고전에서 찾은 품격 있는 부모의 지혜가 있습니다. 바로 후생가외입니다. 후생은 선생의 반대말로, 나보다 나중에 태어난 사람을 말합니다. 후생가외는 "나보다 뒤에 태어난 사람은 가히 두려운 존재다"라는 뜻입니다.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내가 두려워할 존재입니다. 두려워하는 사람 앞에서는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행동하고, 함부로 아이 몸에 손 대지 않습니다. 두려워한다는 것은 내가 삼간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아이 손을 잡을 때 잡아챌까 손을 잡을까, 아이에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친구가, 이 아이가 훗날 얼마나 멋진 인생을 살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것이 후생가외입니다. 우리는 아이를 키울 때 미래의 멋진 모습을 상상합니다. 우뚝 서서 자기가 해야 할 꿈을 펼치는 아이를 상상합니다. 그러려면 후생가외의 마음으로 예의를 갖추고 인격적으로 대하면 됩니다. 훈육은 아이를 키우는 말이고, 학대는 아이를 무너뜨리는 말입니다. 그 차이는 부모의 품격에 있습니다.
측은지심과 역지사지, 품격의 핵심
품격 있는 부모가 가져야 할 두 가지 마음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측은지심입니다. 측은지심 인지단야라는 말이 있는데, 측은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얼마나 갖고 싶을까, 얼마나 하기 싫을까, 아이고 크느라고 애쓰는구나 하는 마음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공감이고, 아이의 발달을 이해하는 마음입니다.
아이가 떼를 부릴 때 "떼 부리지 말랬지, 아까 약속했지, 엄마가 분명히 말했지, 너도 안 한다고 했지"라고 말하는 것도 맞는 말입니다. 아이는 약속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의 발달 상 조금 전에 엄마랑 약속한 건 다 잊어버렸고, 지금 이 물건을 보는 순간 갖고 싶다는 마음만 있습니다. 아이의 발달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른 뇌까지 발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아이 뇌는 2층 뇌, 감정뇌까지 완성이 되었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렇게 아이의 발달을 이해하는 측은지심을 가지면 "그래, 얼마나 하기 싫으면 저럴까"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기 싫다고 안 해? 갖고 싶다고 가져? 다 가지는 거야?"라고 따지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는 다 사주지 않고, 먹기 싫다고 해서 편식하게 놔둘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그럴까 라는 마음을 가지면 최소한 모진 말, 막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측은지심은 우리에게 굉장히 좋은 필터링을 제공합니다. 크느라고 애쓰는구나 하는 마음으로 할 말을 하면서도 절대로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게 됩니다. 측은한 마음을 갖는 것은 인, 인의 처음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는 역지사지입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이는 부모에게 어떤 말을 듣고 싶을까, 내가 아이라면 어떤 말에 상처받고 이 말은 듣기가 싫을까, 내가 어렸을 때 부모에게 듣고 싶었던 말이 뭐였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5살, 7살 아이에게 입장 바꿔 생각하라는 말을 종종 하지만, 사실 이것은 어른들만 가능합니다. 아이들은 자기 생각과 마음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내가 만일 너라면, 내가 만일 저 사람이라면 하고 역지사지가 가능합니다.
측은지심과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육아를 하면 우리는 분명히 함부로 말하지 않고 아이를 막 대하지 않습니다. 막 대하면 아이는 막 큽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 대접을 받았는데 어떻게 제대로 클 수 있겠습니까? 부메랑을 손에 쥐고 던진다고 상상해보세요. 그리고 잠시 후 그 부메랑이 내 손에 딱 오는 것을 상상하세요. 측은지심과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지금 아이를 대하면, 10년 후, 20년 후, 30년 후 우리 아이가 나를 그렇게 대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관계는 행복한 관계이고, 그 인격적인 대우가 인격적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현재 육아에 집중하다 보면 가끔은 우리 아이가 미래의 어른이라는 것을 종종 잊기도 합니다. 하지만 품격 있는 부모가 가진 측은지심과 역지사지로 아이를 대한다면, 품격 있는 부모로서 품격 있는 육아를 할 것이고, 부모와 아이는 분명히 품격 있게 성장하면서 지혜로운 삶,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훈육과 학대는 한 끗 차이입니다. 하지만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부모의 품격입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www.youtube.com/watch?v=L9bjvaJIK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