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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 방식이 아이 인생을 결정한다 (민주적 양육, 과잉보호, 훈육 방법)

by 케어민스 2026. 1. 24.

부모는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사회'입니다. 아이는 부모와의 관계 경험을 통해 사람은 나에게 어떻게 반응하는지, 내 행동은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배웁니다. 아주대학교 이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부모의 양육 방식이 아이의 첫 사회성을 결정하며, 이것이 평생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합니다. 좋은 양육은 아이의 기분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미래를 지켜주는 것입니다.

 

민주적 양육이 아이의 사회성을 만드는 이유



마음 린드의 이론은 부모 태도를 2차원으로 분석한 획기적인 연구입니다. 처음에는 허용과 통제를 하나의 축에서 봤지만, 이분이 처음으로 이게 서로 다른 차원이라는 것을 밝혔습니다. 애정도 많이 주고 통제도 많이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양육의 큰 두 축은 애정과 통제이며, 이 두 축에 따라 네 가지 양육 태도가 나옵니다.

 

애정과 통제가 동시에 많은 경우를 민주적 또는 권위 있는 양육 태도라고 합니다. 애정은 많은데 통제는 없으면 허용적 양육 태도입니다. 애정은 없는데 통제만 많으면 권위적, 애정도 없고 통제도 없으면 방임입니다. 예를 들어 마트에서 아이가 카트에 있다가 무언가를 집었을 때, 권위적인 부모는 "왜 집어, 놔" 하고 확 뺏어서 갖다 놓습니다. 허용적인 부모는 통제를 못하고 일단 좀 달래다가 심한 경우 뜯어서 줍니다. "아 이거 먹고 싶었어? 가다가 돈 내면 되지 뭐" 이런 식입니다.

 

민주적인 부모는 이게 아이에게 필요한 건지, 내가 사줄 의향이 있는지를 생각하고 사줄 의향이 있으면 "자, 돈 내고 먹어야 돼. 먼저 엄마 아빠가 저기서 돈을 내면 그다음에 먹는 거야"라고 말하고 계산을 하고 그다음에 아이한테 줍니다. 아이들이 부모의 양육 방식에 굉장히 큰 영향을 받는 이유는 부모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관계를 맺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첫 대상이 나한테 이렇게 대해주면 거기서 반응하고, 거기에 대해서 부모님이 다시 반응해주고, 이런 어떤 패턴이 만들어집니다. 그것을 작동 모델이라고 합니다.

 

이 작동 모델은 성장하면서 다른 사람을 만나면 똑같이 작동합니다. 엄마가 너무 허용적이면 선생님도 허용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자기 행동을 통제하지 않습니다. 일어나고 싶으면 일어나고 화장실 가고 싶으면 화장실 가고 물 먹고 싶으면 물 먹습니다. 반대로 부모가 너무 통제적이면 얼어 붙고 쫄아 붙습니다. 부모한테 하는 그 방식을 학교에 가서 그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민주적 양육 태도로 자란 아이는 애정을 받았기 때문에 "나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야, 나는 괜찮아" 이런 마음이 있습니다. 어디 가서 일단 주눅들거나 이런 게 별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내가 위치가 낮거나 그래도 합당하면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주눅들지 않으면서도 통제도 적절히 됐기 때문에 예의는 바릅니다. 자기 위치를 아는 것입니다.

 

과잉보호가 만드는 문제아의 특징

과잉보호가 만드는 문제아의 특징



최근 새롭게 등장한 최악의 양육방식이 '과잉보호 부모'입니다. 너무 보호하고 너무 사랑을 해주고 다 들어줄 것 같은데, 이렇게 잘한 사람들이 성인이 되면 상담받을 때 부모님을 과잉 보호라고 하지 않습니다. 과잉 통제라고 합니다. "너는 지금 나의 보호를 받아야 돼, 내 방법이 옳아" 이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어, 보호해줘서 너무 좋아" 이런 게 아니죠. "왜 내 맘대로 못 하게 해?" 이렇게 느낍니다.

 

요즘 자녀 수가 적어요. 적은 수에 아이를 낳을 때 부모는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줄 거야 이런 마음이 듭니다. 돈이면 돈, 뭐면 뭐 이렇게 해서 아이가 잘되도록 나는 최선을 다할 거야. 그러면 어려서부터 학원부터 시작해서 친구, 동네 이런 것들을 다 세팅을 합니다. 아이들은 거기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습니다. 겉에서 보면 이건 과잉 보호지만 이 아이는 사실은 상당한 통제 속에서 살게 되고, 부모가 자녀한테 가진 기대가 커질수록 그게 심해집니다.

 

과잉 허용적 부모는 쩔쩔 맵니다. 과잉 통제적 부모는 절대로 쩔쩔 매지 않습니다. 요즘 엄마들을 보면 왜 이렇게 쩔쩔 매냐고 물어보게 됩니다. 애걸복걸 "아 이것 좀 하자", "뭐 하면 안 될까?" 쩔쩔 매는 건 "아, 내가 이렇게 말하면 애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이런 게 보입니다. 보통 두 사람이 있을 때 쩔쩔 매는 건 위아래가 있는 것입니다. 윗사람이 아랫 사람한테 쩔쩔 매지 않습니다. 아랫 사람이 윗사람한테 쩔쩔 맵니다. 부모가 나한테 쩔쩔 매면 아랫 사람처럼 대합니다.

 

과잉 보호는 내 아이만 봅니다. "우리 아이 마음이 어떨까?", "우리 아이가 기분이 얼마나 상했을까?" 이런 것에 집중하다 보니까 초등학교 1학년에 현상이 나타납니다. 교실 안에 있는 다른 아이나 선생님에 대한 생각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아이 하나만 보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의 감정, 내 아이 기분을 안 읽어줘. 심한 아이들은 선생님이 "뭘 그리기를 하자"하고 도화지를 나눠 주면 그중에 한두 명은 그거를 찢습니다. "어, 너 그건 왜 찢니?" 그러면 "저 이거 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에요"라고 말합니다. 선생님이 "자, 그러면 안 되지"라고 해서 이 아이가 집에 가서 얘기를 하면 엄마가 달려와서 "아니, 애가 그리고 싶지 않다는데 마음은 읽어 주셨어요? 마음부터 읽어 주셨어야죠"라고 합니다. 이런 황당한 일들이 진짜 많이 생깁니다.

 

과잉보호 받고 자라면 상대를 존중하지 않습니다. 집에서 칭찬을 많이 받고 좀 능력이 좋은 아이들은 살짝 무시합니다. "아, 유치해" 뭐 이런 것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잘 하겠죠. 하지만 조금이라도 자기 기준에 안 맞으면 굉장히 상대방이 불쾌할 만한 행동을 그냥 있는 그대로 합니다. 아이들이 저학년 때는 놀이가 맞으면 놉니다. 내가 보드 게임을 하고 싶은데 다른 아이가 보드 게임을 하면 그냥 거기 가서 놉니다. 아이가 어떤 애인지보다 뭘 할지에 더 집중합니다. 한 4학년 정도가 되면 이게 사람을 보고 놉니다.

"저 애가 잘 빌려줘, 친절해, 뭐 잘 도와줘" 이렇게 호감 가는 아이들이랑 놉니다. 과잉보호 받은 아이들은 비호감이죠. 아이들이 얘를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게 아니라 그냥 친구가 되고자 하는 아이들이 굉장히 적습니다. 그러니까 이 아이는 그때 피해 의식이 생깁니다. "왜 나랑은 안 놀아?", "왜 너네끼리 가고 나는 안 가?" 이렇게 해가지고 세상이 엄청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질투하나?" 뭐 이런 생각도 합니다.

 

훈육 방법, 애정과 통제의 균형 맞추기

훈육 방법, 애정과 통제의 균형 맞추기



애정과 통제 균형을 맞춘다는 건 이런 것입니다. 내가 음식을 먹으러 갔는데 나 햄버거도 먹고 싶고 냉면도 먹고 싶고 불고기도 먹고 싶어. 근데 이 세 개의 맛을 골고루 잘 느끼고 싶고 어느 하나의 맛도 놓치고 싶지 않아. 애정과 통제는 부모의 양육 방식이고, 훈육은 그거를 구현하는 행동이고 특히 통제를 어떤 식으로 할 거냐 이런 것입니다. 훈육은 그냥 가르치는 겁니다. "자, 이런 행동은 하면 안 돼", "자, 이 행동은 싫어도 해야 돼" 이거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큰 카테고리로는 통제지만 "이거 하지 마" 이런 식의 통제는 아닙니다. "네가 이렇게 해서 밖에 나가면 환영받지 못해" 이런 마음이 애정입니다.

 

너무 통제를 안 해서 아이가 학교에는 친구에게는 망나니 꾸러기, 뭐 이런 아이로 큰 아이들을 보면 엄마가 애를 사랑하지 않았구나 하는 느낌이 듭니다. 내 눈앞에서 얘가 기분이 좋으면 됐지, 얘가 다른 사람한테 좋은 평가를 받고 인정받는 그런 사람이 되는 데는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나는 너무 사랑스럽지만 바깥에 나가면 밉상인 애로 키우는 것입니다. 부모들이 애정은 다 있다고 생각합니다. 애정이 없이 자식을 키울 순 없습니다. 애정의 표현을 적절히 좀 해야 됩니다. 어떤 분들은 막 말과 스킨십의 애정이라고 생각해서 아주 그 스킨십과 사랑한다는 말에 아이를 빠트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도 중독입니다. 딴 사람들이 그걸 안 해주면 너무 괴롭습니다. 애정은 다 있는데 애정을 그래도 좀 행동으로 표현하는 순간들이 있어야 됩니다.

 

통제에는 내가 어떤 행동에 대한 기준이 명확히 서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길에서 뛰면 안 돼라고 내가 생각을 갖고 있으면 그거를 못 뛰게 하면 통제를 하는 것입니다. 집에서 밥 먹기 전에 간식을 먹으면 안 돼라는 어떤 내 기준이 있을 때 아이가 그거를 지키게 해, 이게 통제입니다. 굉장히 많은 유형이 "안 돼" 그랬다가 "어우, 야 그만해" 이렇게 하다가 "이번만이다" 이렇게 됩니다. "아, 우리 엄마는 오래 졸라면 해줘", "내가 막 울고 불고 하면 들어줘" 이렇게요.

 

그래서 아이는 원칙을 배우는 대신 방법을 배웁니다. 무엇이 옳은지보다 어떻게 해야 허락을 받을 수 있는지, 행동의 기준보다 부모의 기분을 흔드는 요령을 먼저 익히게 됩니다. "울면 된다", "계속 조르면 된다", "버티면 이긴다"는 메시지를 배우는 것이죠.

 

민주적 양육에서 중요한 것을 일관된 기준과 예측 가능한 반응입니다. 같은 행동에는 같은 반응이 돌아온다는 경험이 쌓일 때 아이는 스스로 행동을 조절하는 힘을 기릅니다.

 

좋은 부모란, 아이를 힘들게 하지 않는 부모가 아니라 아이를 세상에서 덜 힘들게 살아갈 수 있게 준비시켜 주는 부모입니다. 아이의 기분을 지켜주는 데서 멈추지 않고, 아이의 미래까지 함께 지켜주는 것, 그것이 바로 민주적 양육입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www.youtube.com/watch?v=pZxPn95Uurw&t=26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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